Ge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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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고사직

2025년 올해를 떠올려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권고사직이다.
작년 12월부터 사내에 안좋은 소식들을 간접적으로 전해듣곤 했는데, 4월 월급 날에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월급이 밀린지 일주일 후인 4월 16일을 마지막으로 권고사직을 받고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막막했다.

개인적으로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민도 잠시, 퇴사 3일 전부터 이력서를 다 갈아엎고 새롭게 만들었다. 산업에 상관없이 직군이 맞다면 모든 회사에 내 이력서를 돌렸다.

1-1. 이직과정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리에 앉아 어제 제출했던 이력서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미확인이면 기대했던 마음이 한 풀 꺾였고,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으면 피를 말렸다.

기대하고 있던 회사에서 서류탈락 통보를 받으면, 자존감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 또한 한 두번이지, 스무 번을 넘게 탈락소식을 들을 때부턴 무던했다.

면접을 보러 갈 때면, 긴장되는 마음에 청심환을 샀었다.
청심환이 가격이 만 원이상인데, 수입이 끊긴 입장에서 이 또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청심환 한 번에 면접을 합격할 수 있다면, 그게 대수겠냐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샀다. 1차이던 2차이던 무조건 마셨다.

간절했던 것 같다.

1-2. 과제

알고리즘은 자신이 없어서 알고리즘을 보는 곳이라면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지원하고 난 뒤, 알고리즘을 봐야하는 곳이라면 문제도 보지 않고 고사했다. 알고리즘을 열어보는 것마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계속되는 서류탈락과 낮아진 자존감, 자신없는 알고리즘..
마음이 급하다보니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은 곳에 배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과제전형은 가리지 않고 모두 응시했다.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7일까지도 시간이 주어졌다.
짧은 시간이 주어질 경우 특수한 기능만 구현하는 경우가 많았고, 최대 7일이 주어지면 하나의 페이지를 온전히 개발하는 것이었다.

7일 과제전형을 보고 난 뒤, 떨어졌을 땐 다시는 과제전형에 응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거렸지만, 금세 '내 실력문제지'하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쉽게도 이번 이직동안에는 과제를 통과해보지 못했다. 응시했던 과제전형에 모두 떨어졌다.

'팀 내 유일한 프론트엔드 개발자였던게 독이었던 걸까..?'

스스로를 의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코드를 작성하는지 궁금해졌다. 다음 회사는 목적조직이 아닌 기능조직이었으면 좋겠다는 니즈가 커졌다.

1-3. 도메인

짧은 경력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도메인으로의 서류합격률은 괜찮은 편이었다. 물류라는 도메인은 나쁘지않은 도메인이었다. 완전 잘 맞는 것도, 그 반대도 아닌 딱 중간이었다.

그래서 같은 도메인으로 이동하는 것도 괜찮았지만 새로운 도메인을 경험해보고 싶은 니즈가 더 컸던 시기였다. 항상 마음 속에 마지막 종착지로 삼고 있는 도메인이 있다.

그 도메인에서 프로덕트를 개발하고 싶어서 개발자로 전향을 꿈꿨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종착지 도메인 전에 많은 곳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경험에 있어서도 여전히 나는 쓸모없는 공부는 없다고 믿는다.

1-4. 실업급여

4월 16일 회사에서 권고사직으로 퇴사한 뒤, 실업급여를 늦어도 한 달 뒤쯤에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전달해주는 서류도 필요하고, 고용노동부에서 업무를 처리하는데도 시간이 걸려서, 대략 5월 말에 첫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실업급여를 받기위해선,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해주는 교육을 들어야한다.
또한, 정부측에선 바보가 아니다. 아무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속된 말로 꽁돈을 주지 않는다.

한 달동안 몇 번의 취업활동을 했는지 인증해야하고, 그 인증을 통과해야 실업급여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첫 강의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 이전 회사 타운홀보다 큰 강의실에 빼곡히 찰 정도로 실업자가 많았다.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1-5 퇴직금

이전 회사는 정확히 1년하고 3개월 차에 실업하게 되었다.
퇴직금도 DC형이 아니라서, 퇴사할 때 정산해서 전달하는 식이었다.
근데 회사가 어려워지다보니 퇴직금을 온전히 전달받는다는 보장이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지급금을 신청했고, 최소한의 금액을 전달받았다.
나는 몇 백만원 정도의 손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정도가 어디야..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반면, 사우였던 그 누군가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게 대지급금 지급 이전에 서류를 작성할 게 있어서 강남 고용노동부를 방문했었는데, 나 빼고 5명정도가 더 왔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는 울먹이며 받아야할 돈을 못받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해냈다.
그 일은 또 한번 나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1-6. 재취업

다행히 5월 초-중순부터 면접이 잡히기 시작했었다.
신입 때도 그랬지만, 면접은 항상 운칠기삼이다.

내가 아는 내용이 많이 나오면 잘 대답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잘 대답할 수 없으니 말이다.

같은 도메인 회사로 이직을 위해 봤던 면접에서 '확실히 안다' 할 만한 질문이 들어오지 않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반면, '이건 진짜.. 붙을 가능성이 없어..' 했지만 합격 소식을 들은 곳도 있다.
'이 정도 대답했으면 당연히 붙겠지' 자만했던 회사에서 떨어졌을 때, 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부들부들 거렸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다.

다 내 부족함이었을텐데 말이다. 모든 순간 겸손해라는 아버지 말씀이 떠오른다.

다행히 5월 말 최종합격한 두 곳의 회사 중, 조건이 더 만족스러운 회사에 입사를 결정했다.
입사를 결정했던 요인 중 하나는 '디자이너 유무'였다.

한 곳은 디자이너가 없고 다른 한 곳은 디자이너와 면밀히 소통하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달받았다.

이전 회사는 디자이너가 없었다. 스쿼드 외 디자이너와 소통할 일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소통이 필요하기 시작했던 순간에 구조조정으로 기회가 날아가버렸다. 그래서 더욱 디자이너와 일할 수 있는 경험을 요했다.

6월 16일 날짜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2. 결혼

앞에서 언급했던 개인적인 큰 이벤트는 바로 결혼이었다. 2024년 말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2-1 일침

올해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돌이켜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상견례였다.
4월에 회사를 나오고 신혼 집을 구하지 못한 채, 5월 초 상견례를 했다.

연결되고 있던 회사도 없던터라 걱정도 많이 되었고, 자존감도 크게 떨어졌던 시기였다.
또한 실업급여도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모아놓은 돈도 크지 않아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상견례를 앞둔 4월 말쯤, 나 답지 못하게 이런 저런 걱정을 푸념처럼 여자친구에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내색하진 않았지만 여자친구에게도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본인도 경제적 활동으로 수입을 벌고 있으니 부정적 생각보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에 더 힘쓰는게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올라가는 기차에서 이를 꽉 깨물었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고 책임져야할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 힘들다는 말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게 무엇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재취업이었다.

2-2 신혼집

6월에 입사가 결정되고, 입사날짜를 조율하던 중 일주일을 미루게 되었다.
회사가 정해졌으니, 빠르게 신혼집을 구해야했기 때문이다.

수원역, 화서역, 영통역 주변에서 신혼집을 구하고 싶었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집 앞에 지하철이 있으며, 주변에 상가가 크지 않되, 조용한 지역을 구하고 싶었다.

그렇게 물색하며 알아보고 난 뒤, 여자친구에게 휴일에 올라와서 내가 리스트업한 집을 한 곳씩 보여주며 같이 집을 둘러보았다.

마음에 드는 집이 없었는지, 여자친구는 집을 보러 올라올 때면 자기 전에 '네이버 부동산' 앱을 열어보며 마음에 드는 집을 밤새 즐겨찾기에 담아놓기도 했고, 다음 날 나는 그 즐겨찾기 중에서 우리의 예산과 맞는 곳에 전화를 돌리며 집을 보러가기 위한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한 달 빠-짝 집을 구하기 위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 우리는 뜬금없이 안양으로 신혼집을 구했다.

주변 가장 가까운 지하철은 10분~15분 정도 걸어야하지만, 단지가 크고 조경이 잘 되어있다. 평수가 넓지 않지만 두명이서 살기에 적당한 크기의 평수이다. 가전을 맞추고 집을 하나 둘 채워가며 제법 신혼집 다움을 갖추게 되었다.

2-3 감사

우리가 신혼집을 구하고, 공간을 채워가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 중 아빠 엄마, 그리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식을 올리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다.
와이프의 인스타는 참석해주신 분들께서 많은 사진을 찍고 태그를 걸어주셨다. 내 카톡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훨씬 많은 메시지가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된 회사에서도 많은 축하를 받았다. 심지어 말 한번 건네보지 못했던 동료에게 축하를 받고, 결혼식에 참석해주신 분도 계신다. 😭

몇 없는 내 소중한 친구들이 가장 먼저 결혼식에 와서 부족한 자리를 메워줬고, 첫 회사에 사수는 먼 거리를 달려와줬다.

연락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는데 축하 화환을 보내주시고, 찾아뵙지 못한 친척이 '근휘야 나 누군지 알겠니?'하시며 인사를 건네셨다.

식이 끝나고 저녁에 한 분한분께 감사 메시지를 전달드리고 나서야 결혼이 실감났다.

행복했다.


3. 사이드프로젝트

3-1. 블로그

현재 블로그는 25년 1월 설날에도 일하는 여자친구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조금씩 만들기 시작했다.
개발자에게 쇼핑이란, 어떤 기술스택을 고르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Astro를 써보고 싶었는데, 내가 얼마나 꾸준히 만들지 알 수 없고 흐지부지 되는게 싫었다.
회사에서 React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Next.js를 너무 오랫동안 접해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Next.js로 기술스택을 정했고, 15버전에 맞게 세팅을 해주었다.

이전이라면 하나하나 찾아보며 작업해야했었지만, 당시엔 Cursor를 적극적으로 쓰고 있었다. Cursor에게 물어가며 하나씩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 새 윤곽은 잡혀있는 상태였다.

tailwind를 사용하고, 배포는 vercel로, build는 SSG로 작업했다.

내게 Next.js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Lee Robinson이며 현재는 Cursor로 이직했지만 당시엔 Vercel소속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Robinson의 github에서 blog를 많이 참고했다.

애니메이션에 꽂혀있을 때라,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이 적용되어있는 블로그도 많이 참고하려고 노력했다.

paco
Anthony Fu
Emil Kowalski

단순 블로그 만들고 글쓰는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 색깔을 입혀가면서 원하는대로 만들기는 어렵다.

고민했던 몇 가지를 기록차 남겨본다.

  • SEO는 어떻게 할까?
  • mdx로 만들고 싶은데 어떤 방법들이 있지?
  • image는 어떻게 관리할까?
  • TOC는 어떻게 하지?
  • editor 자체를 블로그에 담아서 보여주고 싶은데 어떤게 있지?
  • 폰트는 어떤걸로 하는게 좋을까?
  • content는 어떻게 관리할까?
  • 배포는 어떻게하면 편할까?
  • 코드하이라이팅은 어떻게 할까?
  • 데스크탑 기준으로만 개발해봤는데, 반응형 어떻게 편하게 맞추지?
  • 트윗/유튜브 임베드는 어떻게 하지?
  • params가 SEO에 영향을 주는 것 같은데 해결 방법이 있을까?

3-2. quokka-time

권고사직 전, 필수출근일인 목요일을 제외하고 모두 재택근무를 했었다.
목요일날 출근할 때마다 버스를 타기위해 걸어가던 중 항상 떠오르던 같은 생각이 있었다.

'저번 주에는 몇 시에 출발했었더라..? 회사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더라..?'

나이가 들었는지, 기억력이 안좋아지는게 체감되었다. 오늘은 퇴근하면 꼭 출퇴근기록앱 만들겠다며 다짐했지만 퇴근길에는 녹초가되어서 집에 와서 누워있다가 밥먹고 운동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회사도 옮기고, 집도 옮기게 되었는데, 이제는 진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이 하나도 없었고, 매일 출근을 해야하며 정해진 시간이후에 출근하면 지각으로 간주되었다.
변수는 1호선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 호선은 1호선이다. 그러다보니 잔고장이 많은 편이다. 동료에게는 더우면 더워서 고장나고, 추우면 추워서 고장나고, 비 많이오면 지연, 눈 많이오면 지연이라고 1호선을 소개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도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이 상이했다. 특히 2호선과의 환승을 얼마나 적절히 맞추느냐에 따라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도 달라졌다.

즉, 한마디로 예외케이스가 많다고 생각했고 출퇴근앱을 만들어서 꾸준히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만의 데이터를 쌓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알아갈 시간이 부족해진다. 특히 요즘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빈도가 크게 줄었다. 결혼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온전히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줄었다고 생각하며, 출/퇴근할 때 떠오른 생각, 아이디어들도 이 앱에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오늘 꼭 해야할 일을 기록하는 Todo앱으로 전락했지만말이다. 😅

어쨌든, 작년 6월 입사부터 꾸준히 만들다가, 텀을 가졌다가 다시 꾸준히 만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7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데이터를 쌓던 중, 한번의 실수로 데이터를 날려먹었다. 그래서 가장 최근의 데이터는 11월 말이다.

참고로 해당 앱은 모든 소스코드를 바이브코딩으로 개발했다. 당시 중독처럼 마시던 제로콜라를 끊고, 그 돈으로 claude-code 100달러를 결제했다.

소스코드를 보지 않고, AI만으로 개발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현재 해당 소스코드에 대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세한 로직을 나는 모른다.

아직 다른 사람에 비해 AI를 잘 쓴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테스트하고 있다.

간략히 정리만 해보면,

E2E 중심으로 테스트코드를 작성하고 있다.

B를 수정했는데 A기능에 오류가 났다. 그래서 작은 단위의 테스트를 붙였는데 AI로 작업하다보니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E2E테스트를 중심으로 해당 기능에 초점을 맞춰서 작업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테스트코드의 장점은, 의존성제거이다. 불필요한 의존성을 제거하면서 개발할 수 있어서 딱 필요한 만큼만 의존성을 추가해서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브코딩으로 개발하다보면, 소스코드를 읽는 건 중요하지 않고 해당 기능이 잘 돌아가는지 중요하더라, 그래서 E2E 중심으로 해당 기능이 잘 돌아가는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한다.

하다보니 늘어나는 기능들

해당 앱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만의 데이터를 쌓고 싶다는 니즈에서 출발했다. 출근길에 출근시작을 누른 뒤, 회사에 도착하면 완료버튼을 눌러서 Door to Door로 얼마나 걸리는지를 측정하는게 최초의 MVP이었다. 하지만 점점 필요한 기능들이 생겨났다. 가령, 출근길 도중 내가 지하철을 몇 시에 타는지, 지하철 까지 걸어가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환승은 몇 분 뒤 하는지, 오늘은 지하철이 몇 분에 오는지 등등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출근시작을 누른 뒤, 기록 버튼을 띄우고 기록을 누를 때마다 해당 위치와 시간이 기록되도록 만들었다.

현재는 GPS에 집중하는 중

현재는 GPS 인식률에 집중하고 있다. 출근길에 조금씩 데이터가 쌓이다보니 기록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귀찮아지더라. 그래서 나이키러닝처럼 내가 출근버튼을 누르고 이동하는 경로 및 시간이 트래킹 되길 원하게 되었다. 흡사 나이키러닝을 클론코딩 하는 중이다. 물론 앱이 아닌 웹으로 말이다.

가장 큰 허들은 GPS 인식률이다. 앱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웹의 GPS 인식률을 맞추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그라운드에서 앱을 켜놓고 다른 작업을 하다가 앱을 다시 열면 GPS가 내 현재위치에서 크게 변경되었다가 다시 맞춰지곤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바이브코딩으로 여러 알고리즘을 도입해서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또한, 이제 내가 소스코드를 보며 개선해야할 때인가 싶어서 확인해보려고 하면, 방대해진 소스코드를 하나씩 이해하는게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아예 앱으로 마이그레이션을 하는 중이다. 현재는 여기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테스트환경 및 속도 중요성

이 앱을 개발하며 깨닫게 된 점중 하나는 테스트환경 및 반복루프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해당 앱은 GPS가 중요하다보니 퇴근 후 개발하고 난 뒤, GPS 인식률을 개선하고 테스트하려면 바깥으로 나가서 걸어봐야한다. 😭 퇴근하고 녹초가 되었는데 한 두번 나가서 테스트해보다가 차라리 딱 정해서 아침 출근길에만 테스트해보자로 타협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오늘은 정말 개선되었겠지? 생각이 들더라도 확신할 수 없다. 내일 실제로 테스트해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즉, 내일까지 기다려야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때문일까, 내가 처음 구상한 것에 비해 오랫동안 앱을 개선하며 붙잡고 있다. 당초에는 특정기능만 필요하다 생각하여 2~3달쯤 개발하려나 싶었는데, 벌써 8개월째 유지보수 중이다.

물론 출시할 생각은 아직 없고, 나 혼자서 나만의 데이터를 쌓는게 목적이다.

그 외

참고로 앱은 supabase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고, PWA 당시에는 React를 사용했다. 지도는 Mapbox를 사용하고 있고, 디자인시스템은 Radix와 Shadcn UI를 사용한다. 스타일 라이브러리는 당연히 tailwind이다.

이외 GPS 인식률을 개선하기 위해 칼만 필터 알고리즘을 적용해보기도 하고, turf로 인식률을 개선해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다. 또한 지루한 출근길 소소한 재미요소이다.

최근에는 노트탭을 추가했다. 출/퇴근길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최소 15분~20분정도는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래서 그 때 떠오른 생각들을 노트에 적기 위해 노트탭을 추가했다. 조금씩 더 발전시켜가며, 나만의 공간을 앱 내에서 구현하고 싶다. 마치 ryos처럼 말이다.


4. 내 나이만큼 책 읽기

이젠 당연한 걸까.. 올해도 어김없이 실패했다. 심지어 작년엔 3권을 읽었는데 올해도 동일하게 3권이다.

  • 부자아빠 가난한아빠
  • 단 3개의 미국 ETF로 은퇴하라
  • 100일 챌린지, 작은 도전이 만들어낸 큰 변화

조금의 변화라면, 단 3개의 미국 ETF로 은퇴하라를 읽고 ETF에 관심이 생겼다는 점이다.
코인과 주식을 시작하며 작게작게 돈을 굴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알게된 점은 난 확실히 단타와 맞지 않다는 점이다.
이전 회사에서 동료가 S&P500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며 알려주었을 때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었는데, 왜 더 빨리 시작하지 못했을까 후회스럽다.

하지만 당시로 돌아가도 똑같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이다.
난 내가 관심이 생겨야 파고드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결혼을 준비하며 한 없이 부족한 자금에 어떻게 하면 돈을 벌고, 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찾아보다가 관심이 생긴 것이다. 절대 안 팔 종목에 꾸준히 저축하듯이 돈을 모을 예정이다. 이게 나의 투자성향에 가장 잘 맞는 방법이라는 것을 투자는 늦게 시작했지만 비교적 빨리 알게 되었다.


5. 2026년

2024년 회고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적었었다.

2025년은 내가 두려워 하는 일에 조금 더 마주서보는 내가 되려고 한다.

당시 글을 적었을 때보다 훨씬 두려운 일들이 올해 많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경험이 내게는 복리다.

26년은 더 많은 경험을 쌓는데 집중해보려고 한다.

2025년 회고 | geuni